[서호정] 1월 전훈 무용론 뒤집은 벤투, 더 넓은 선수풀 거머쥐다

입력
기사원문
서호정 기자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서호정 기자 = 월드컵,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남녀 각급 대표팀은 1월 동계 전지훈련이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 A대표팀에 한해서는 무용론 바람이 이어지고 있었다. 2002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많은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진출했고,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의 협의에 의해 만들어진 1월 전지훈련은 시즌 중인 유럽, 중동의 선수들은 소집할 수 없는 로컬 룰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A대표팀에 가동할 베스트 라인업의 절반 가까이가 빠지는 전지훈련은 경기력과 동기부여 양면 모두 딜레마였다. 수준 높은 팀들과 연습경기를 통해 경기력과 조직력을 올리기엔 대표팀의 전력이 완벽하지 못했다. 체력을 비롯한 피지컬적인 훈련을 하기에도 멤버 구성이나 시기 모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1월에 소집돼 기회를 얻은 새로운 선수들이 '나도 월드컵에 갈 수 있다'는 의욕보다 '결국 오게 될 선수들의 대체자일뿐'이라는 인식을 떨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가 이런 문제가 가장 드러났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당시 A대표팀은 브라질에서 현지 분위기를 체험하고 피지컬 훈련을 치른 뒤 미국으로 와서 세 차례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그 기간 내내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은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여부, 박주영의 선발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며 훈련과 친선전에 집중되지 못하는 분위기만 형성됐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는 신태용 감독도 딜레마는 비슷했다. 새로운 논란도 생겼는데 특정 팀에서 많은 선수를 선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전북은 7명의 선수가 오키나와 전지훈련 중 대표팀에 차출돼 터키로 날아갔다. 그로 인해 전북은 새 시즌 준비에 차질을 빚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처럼 첫 승과 16강을 위해 K리그가 어떤 희생이든 감내해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반발이 크다. 주력 선수가 빠진 상황에서 대표팀이 제대로 된 훈련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 K리그의 시즌 준비에 피해를 끼치는 대표팀의 전지훈련은 무용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벤투 감독의 이번 전지훈련은 과거와 달리 월드컵 최종예선이 붙어 있다는 특수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전지훈련 무용론에 반박할 수 있는 성과는 어느 정도 필요했다. 아이슬란드, 몰도바는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가 상대할 팀들에 비하면 레벨이 떨어지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줘야 했다. 거기다 새롭게 선발할 선수들도 활용하며 그들이 결코 인원 채우기를 위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벤투 감독은 그 어려운 미션을 모두 수행해냈다. 아이슬란드에 5골, 몰도바에 4골을 넣고 승리했다. 득점 과정도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팀의 의도에 기반한 루트로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축구에 부합하는 장면들이었다. 유럽팀을 대파했다는 것보다는, 지난 11월부터 나오기 시작한 경기 전반을 장악하며 상대를 무너트리는 벤투 감독의 게임모델이 변함 없이 나왔다는 연속성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다음은 새로운 얼굴들의 활약이다. 하나의 시퀀스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준 것을 넘어 경기 전체적으로 기존 선수들과 융화돼 좋은 경기력을 주도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김진규다. 2.5선에 배치된 김진규는 자신의 A매치 데뷔전에서 1골 1도움 활약을 한 데 이어 몰도바전에서도 선제골을 뽑으며 2경기 연속 골을 터트렸다. 패스앤무브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완벽한 볼 컨트롤, 전환 패스, 마무리,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전진 능력을 자랑했다. 황인범, 정우영이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현재 벤투호에서 선수층이 가장 얇은 편이었던 중원에 김진규가 더해지며 큰 고민이 해소됐다.

김건희에게 투자한 시간도 벤투호에겐 긍정적인 아웃풋으로 돌아왔다. 아이슬란드전에서는 교체 출전, 몰도바전에서는 선발 출전한 김건희는 득점은 하지 못했지만 전방에서의 조력자 역할을 확고히 했다. 벤투 감독이 최전방 공격수에게 요구하는 많은 활동량에 기반한 다양한 플레이 관여도 성실히 수행했다. 황의조에 이어 조규성, 김건희가 차례로 최전방에 안착했다. 



이전부터 벤투호에 선발됐지만 A매치 10경기 미만이었던 선수들도 이번 전지훈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조규성, 백승호, 박지수, 정승현이 대표적이다. 조규성과 백승호는 나란히 아이슬란드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올렸다. 백승호는 프리킥 능력까지 구사하며 김진규, 권창훈과 함께 2경기 연속골을 터트렸다. 박지수와 정승현도 모처럼 충분한 시간 동안 기용됐다. 

여기에 짧은 시간에도 자신에게 온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한 엄지성, 조영욱은 큰 자신감을 A매치 데뷔전에서 얻었다. 모든 선수가 기용되진 않았지만, 제한된 시간과 기용 인원 안에서 벤투호는 최대치의 효율성을 뽑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1월 칼럼에서도 썼지만, 벤투 감독은 A대표팀에 새로운 선수를 선발하는 프로세스를 진중하고 장기적으로 가져간다. 홍정호, 주민규처럼 시즌을 통틀어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라 해도 현재 자신들이 만든 게임모델에 적응하기 어려운 유형이라면 뽑지 않는다. 대신 즉흥적인 판단도 자제한다. 코칭스태프와 함께 관찰한, 팀의 방향성에 적합한 선수들로 상비군에 해당하는 명단을 만든다. 그 안에 있는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존 멤버의 선발이 어려워 대체 자원을 발탁할 때는 코치진 전체와 회의를 갖고 서로의 의견이 일치되는 새 얼굴을 선택한다. 

이렇게 선발된 선수도 소집 기간에는 쉽게 기용되지 않는다. A대표팀에 처음 발탁돼 맹활약한 김진규의 사례가 이례적일 뿐 엄지성, 조영욱, 고승범은 짧은 시간 기용됐다. 김대원과 최지묵은 이번에는 기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벤투호의 방향성을 인지하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시간은 충분히 가졌다. 

벤투 감독은 이제 30명에 가까운 선수풀을 확보했다. 대표로 뽑힐 만한 선수가 아니라 A매치에서 벤투호가 하고자 하는 축구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선수 30여명이다. 월드컵 본선행의 9부 능선을 넘은 벤투호로서는 본선까지 남은 10개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기자 프로필

기사 섹션 분류 가이드
기사 섹션 분류 안내

스포츠 기사 섹션(종목) 정보는 언론사 분류와 기술 기반의 자동 분류 시스템을 따르고 있습니다. 오분류에 대한 건은 네이버스포츠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오분류 제보하기 닫기